1. 클라우드 콘텐츠는 진짜 ‘내 것’일까?
음악과 영화, 책 등의 콘텐츠를 CD나 DVD로 소장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튠즈(iTunes), 구글 플레이(Google Play), 왓챠, 멜론, 유튜브, 애플TV 등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에서 디지털 형태로 음악이나 영화를 구매하거나 스트리밍한다. ‘구매’ 버튼을 누르고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많은 이용자들은 해당 콘텐츠를 ‘소유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들 플랫폼의 대부분은 사용자가 단순히 **‘비독점적 사용 권한(license)’**을 취득했을 뿐, 소유권을 획득한 것이 아니다. 즉, 사용자는 해당 계정이 살아있는 동안, 그리고 서비스 약관이 유지되는 조건 하에서만 해당 음악이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이처럼 ‘소유’가 아닌 ‘접근권(access)’에 불과한 디지털 콘텐츠는, 이용자의 사망 이후에 자동 소멸되거나, 유족에게 이전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2. 유족이 대신 감상하거나 이전할 수 있을까?
많은 유족들이 실제로 겪는 현실적인 문제는 “고인이 수백만 원어치의 음악과 영화를 구매했는데, 왜 우리가 그것을 사용할 수 없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애플, 아마존, 구글 등 주요 플랫폼들의 약관을 살펴보면, 대부분 ‘계정은 개인 전용이며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상속할 수 없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애플의 경우 ‘계정 비밀번호를 공유하거나 타인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명확하며, 사망 시 계정이 폐쇄되고 콘텐츠 사용 권한도 자동 소멸된다. 이 때문에 실제로 한 미국 가족은 고인이 생전에 구매한 아이튠즈 음악 수천 곡에 대한 접근 권한을 요구했으나, 사망증명서와 법원 명령이 있어도 이를 거절당한 바 있다. 구글이나 넷플릭스 역시 유사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콘텐츠 유통사가 저작권자와 체결한 계약 조건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며, 콘텐츠 자체를 소유하는 개념이 아니라 계정 기반 라이선스 구조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사례다.
3. 이용자도 플랫폼도 예측하지 못한 ‘사후 시나리오’
문제는 현재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사망 이후 자신이 보유한 디지털 콘텐츠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는 데 있다. 현실에서는 부동산, 예금, 주식 등 물리적 자산의 상속은 법적으로 정비돼 있으나, 디지털 자산—특히 콘텐츠 사용권과 같은 ‘비물질 자산’—은 여전히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플랫폼들도 ‘디지털 유산’에 대한 사후 정책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애플은 최근에서야 ‘디지털 유산 연락처(Digital Legacy Contact)’ 기능을 도입해, 사망 시 유족이 일정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음악이나 영화 구매권 자체의 ‘이전’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이처럼 사후 계정 관리에 대한 기준이 부족한 상태에서, 개인이 수년간 축적한 디지털 콘텐츠 자산은 어느 순간 플랫폼과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용자의 투자 가치가 플랫폼 약관 하나로 무효화되는 현실은, 소비자 권리 보호의 사각지대를 보여준다.
4. 디지털 콘텐츠 자산의 상속, 가능한가?
현행법상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 개념만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유산으로 상속하는 데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최근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디지털 자산의 상속 가능성을 열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2015년 미국에서는 유니폼 디지털 자산 접근 및 이용법(Uniform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 UFADAA)이 제정되어, 법정 대리인이 고인의 동의 또는 법원 명령을 통해 일정 범위의 디지털 자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이는 이메일, 클라우드 저장소, SNS 계정 중심이지, 저작권이 걸린 콘텐츠 사용권 이전에는 여전히 벽이 존재한다. 향후 디지털 콘텐츠가 하나의 경제 자산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라이선스 계약의 개정과 사용자에게 사후 옵션을 제공하는 서비스 구조 개편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소한 사전에 ‘계정 이전 동의’를 설정하거나, 구매한 콘텐츠를 일정 조건 하에 가족에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이용자 중심의 선택권이 필요하다. 현재로선 사용자가 생전에 자신의 콘텐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워두는 것 외에는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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