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타버스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
메타버스는 단순한 가상현실 공간을 넘어, 현실 세계의 확장판으로 여겨지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이 안에서 우리는 단순히 ‘게임 캐릭터’를 넘어서, 아바타라는 존재를 통해 사회적 활동, 업무, 경제 활동을 한다. 예를 들어 ZEPETO, Roblox, Meta Horizon Worlds와 같은 플랫폼에서는 나의 외형, 취향, 행동, 심지어 감정 표현까지 디지털화된다. 현실에서의 나는 생물학적으로 유한한 존재이지만, 메타버스의 나는 플랫폼이 유지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실의 내가 사망했을 때, 메타버스 안의 ‘나’는 어떻게 되는가? 아무런 조치 없이 남겨질 수도 있고, 혹은 누군가에 의해 삭제되거나 추모 공간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이는 결국 디지털 정체성과 사후관리라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윤리적·법적 과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2. 메타버스 속 디지털 유산, 누가 관리할까?
현실에서 재산을 상속받는 것처럼, 메타버스 내 자산이나 기록도 디지털 유산으로 간주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랫폼 내에 보유하고 있는 가상화폐, 유료 아이템, NFT 기반의 의상이나 공간, 창작 콘텐츠 등은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하지만 이 자산들을 누가 어떻게 상속하거나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법적 체계는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실제로 2020년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는 메타버스 상의 디지털 자산에 대해 유족이 접근하거나 삭제 요청을 하려 했으나, 본인 인증 또는 법적 권한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플랫폼마다 약관이 달라 유족이 관리 권한을 얻기 위해서는 해당 서비스의 사후 정책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죽은 뒤에도 남겨질 나의 메타버스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단지 기술이나 플랫폼의 문제가 아니라, 사전 계획과 이용자의 인식 문제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3. 디지털 영속성과 윤리적 딜레마
플랫폼이 허용하는 한, 메타버스 속 아바타는 내가 사망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된다. 그것은 나의 말투, 표현, 콘텐츠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디지털 망령’처럼 존재할 수 있다. 특히 AI 기술이 결합된 경우, 고인의 말투나 행동 양식을 학습한 아바타가 타인과의 대화를 지속하는 기능도 가능해진다. 실제로 중국, 미국 등에서는 고인의 SNS 데이터를 학습한 챗봇 형태의 디지털 휴먼이 실험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처럼 고인의 ‘디지털 존재’가 계속 살아있는 듯이 기능하는 것은, 남은 이들에게는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정적 혼란과 윤리적 부담을 초래하기도 한다. 유족 중 일부는 “고인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아바타의 삭제를 요구하고, 또 다른 일부는 “계속 대화하며 위로를 받고 싶다”는 바람을 내놓는다. 결국 메타버스에서의 죽음은 단순히 생물학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존재의 생명 연장 혹은 소멸이라는 복잡한 선택지와 맞물려 있다.
4. 사전 설정의 중요성과 정책적 과제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사전 설정 기능의 도입과 표준화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사망 후 아바타 자동 비활성화”, “디지털 자산의 이전 동의자 지정”, “가상공간 내 추모 공간 전환 여부 설정” 등의 옵션이 사용자 생전의 동의 하에 준비될 필요가 있다. 일부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유저가 자신의 계정을 ‘기념 계정’으로 전환하도록 유족에게 권한을 부여하거나, 일정 기간 활동이 없을 시 자동으로 계정을 비활성화하는 기능을 도입 중이다. 하지만 이 역시 표준화되어 있지 않으며, 대부분의 사용자는 이런 설정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나아가 정부나 플랫폼은 ‘디지털 사후관리법’ 같은 별도의 제도를 마련해, 메타버스 상의 인격권과 자산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결국 이는 새로운 시대의 장례 방식이자, 사후 인격의 존엄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는 영역이다. 지금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미래 세대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기억하게 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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