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지털 자산 시대, ‘상속’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확산과 함께, NFT(대체 불가능 토큰) 및 암호화폐(비트코인, 이더리움 등)는 점차 개인 자산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과거 상속 재산이란 예금, 부동산, 유가증권 등을 중심으로 정의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디지털 자산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가치를 지니기도 하며, 때로는 예술적·문화적 가치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디지털 자산은 전통적인 상속 절차에 쉽게 포함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그 ‘접근성’과 ‘가시성’에 있다. 예금이나 부동산은 국가 시스템에 등록된 기록을 통해 상속인이 쉽게 인지할 수 있으나, 암호화폐와 NFT는 대부분 사적 지갑(private wallet)에 보관되며, 해당 지갑의 접근키(private key)가 없다면 소유 여부조차 파악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많은 유족들이 고인의 디지털 자산이 있는지도 모른 채 상속 절차를 마무리하거나, 심지어 지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영구적으로 자산을 상실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자산 유형의 출현은 상속이라는 고전적 개념 자체를 흔들고 있으며, 제도적 공백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손실을 유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 NFT와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 상속 대상이 되는가?
현재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암호화폐는 일종의 ‘재산적 가치가 있는 권리’로 분류되고 있으며, 민법상 상속 대상이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세청도 이미 상속세 및 증여세 과세 대상에 암호화폐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NFT와 같은 자산 유형에 이르러서 법적 해석이 불명확해진다는 데 있다. NFT는 블록체인 상에 고유한 식별 정보를 가진 디지털 토큰으로, 그림, 영상, 음원, 게임 아이템 등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와 연동된다. NFT의 경우,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해당 콘텐츠에 대한 ‘소유 증명’ 또는 ‘접근 권한’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아 법적으로 물권인지 채권인지조차도 불명확한 상태다. 이러한 모호성 때문에, 법원이나 세무 당국이 실제 상속 시 NFT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 그리고 그것을 상속 대상 재산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일관된 기준이 부재하다. 특히 NFT가 게임 내 자산과 결합되거나 외국 서버에 저장된 경우, 해당 NFT의 소재국, 법적 해석, 접근권한 등 다양한 법적 쟁점이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대부분의 NFT는 특정 플랫폼 지갑(Metamask, OpenSea 등)에서만 열람 및 거래가 가능하므로, 계정 접근 자체가 차단되면 법적 권리 이전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진다.
3. 디지털 자산의 상속에 따르는 실질적 장애물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을 계승하려면, 우선 해당 자산의 존재를 알아야 하며, 둘째로는 그것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법적으로 소유권 이전을 완료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세 가지 모두에 큰 장애가 따른다. 첫째, NFT 및 암호화폐는 고인이 직접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유족이 존재 자체를 확인하기 어렵다. 기존 자산은 통지서, 고지서, 등기부등본 등을 통해 추적이 가능하지만, 블록체인 자산은 익명성과 탈중앙화라는 특성상, ‘어디 있는지 모르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째, 지갑의 프라이빗 키가 상속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해당 자산은 영구 동결되며 누구도 사용할 수 없다. 복구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으며, 단 한 번의 실수로 수천만 원이 증발할 수 있다. 셋째, 특정 암호화폐 플랫폼의 계정은 고인의 이메일이나 2단계 인증 기기와 연결되어 있어,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이유로 유족이 접근 권한을 받기도 어렵다. 해외 플랫폼의 경우 사망 증명서와 번역 공증 서류, 공증된 위임장 등을 요구하기도 하며, 답변을 받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물리적 자산과 달리, 디지털 자산은 단순한 ‘권리 이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실무적 허들이 많다.
4. 해결을 위한 제도적 제안과 개인의 사전 대비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제도적 기반 마련이다. 정부는 NFT와 암호화폐를 명확하게 상속 대상 재산으로 규정하고, 그 평가 기준 및 이전 절차를 구체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프라이빗 키의 상속을 위한 공적 위임 구조 또는 디지털 자산 상속을 전문으로 하는 공공 기구 설립이 고려될 수 있다. 또한 금융위원회 및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사망 시 계정 이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도록 강제하는 입법도 필요하다. 한편, 개인 차원에서는 반드시 ‘디지털 자산 목록’을 정리하고, 지갑 주소 및 프라이빗 키, 복구 문구 등을 안전하게 기록하여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보관하거나 법률 서비스와 연계해 디지털 유언장 형식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일부 블록체인 기업은 ‘사망 시 자동 자산 이전 스마트 계약’ 기능을 실험 중이며, 향후 생전 인증과 사후 검증을 통한 자동 상속 시스템이 도입될 가능성도 있다. NFT와 암호화폐는 더 이상 특정 집단만의 자산이 아니다. 모든 개인이 디지털 자산을 소유하는 시대가 되면서, 그 상속과 보존 역시 이제 필수적인 생애 주기 계획의 일부로 편입돼야 한다. 사망 후에도 자산이 소멸되지 않고 온전히 사랑하는 이에게 이어지도록 하는 준비는, 생전의 또 다른 책임이다.
'디지털 유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글 포토’ 속 추억, 가족에게 안전하게 물려주는 법 (2) | 2025.08.07 |
---|---|
AI가 나를 흉내 낸다면, 사후 인격권은 어떻게 보호할까? (5) | 2025.08.06 |
디지털 자산에도 상속세가 붙을까? 법적 쟁점 분석 (9) | 2025.08.05 |
디지털 유산을 위한 ‘비상계획서’ 만드는 법 (13) | 2025.08.05 |
죽은 사람의 유튜브 수익, 누가 가져가나? (7) | 2025.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