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해외에선 어떻게 할까? 디지털 유산 정리에 대한 미국 사례 분석

다음세상계정 2025. 8. 2. 15:54

1. 디지털 유산을 공식 자산으로 인정한 미국의 변화

미국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을 공공의 논의 영역으로 끌어냈다. 특히 정보화 사회의 발전과 함께 사람이 사망한 이후 남겨진 이메일, SNS, 클라우드 파일, 구독 서비스 등 디지털 흔적들이 실질적인 자산 가치를 갖기 시작하면서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법적, 기술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미국 내 다수 주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 (FADAA) 또는 **Revised Uniform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 (RUFADAA)**라는 모델 법률을 채택하고 있다. 이 법은 피상속인의 디지털 자산에 대해 유언 집행자나 법적 수탁자가 합법적으로 접근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를 통해 사망자의 계정에 접근하려는 유족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개인 정보 보호법과도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다.

해외에선 어떻게 할까? 디지털 유산 정리에 대한 미국 사례 분석


2.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의 디지털 사망 정책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플랫폼들은 사용자 사망 이후의 계정 처리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정책을 갖추고 있다. 구글은 “Inactive Account Manager(비활성 계정 관리자)” 기능을 통해 사용자가 생전에 특정 조건(예: 3개월 이상 로그인 없음 등)이 충족되면, 사전에 지정한 연락처에게 데이터 접근 권한을 부여하거나 계정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기능은 미국 내 법적 요구와 사용자 프라이버시 보호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한 대표적인 조치다. 페이스북은 “추모 계정(Memorialized Account)” 시스템을 도입해 사망자의 계정을 보호하고, 가족이 지정한 관리자가 제한된 범위 내에서 게시물 정리, 프로필 사진 변경 등을 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원할 경우, 법적 문서를 제출하면 계정 삭제 요청도 가능하다. 이처럼 미국은 플랫폼 차원에서도 사후 디지털 계정의 권리 이전이나 제한적 관리 방식을 제도화하고 있으며, 이는 점차 다른 국가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3. 미국 내 법원 판례와 실제 사례: 유족과 법의 충돌

디지털 유산에 대한 접근을 두고 벌어진 유족과 플랫폼 간의 법적 다툼 사례도 미국에서 꾸준히 발생해왔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Massachusetts 주에서 사망한 군인의 가족이 야후(Yahoo) 계정에 접근하려 했던 사례가 있다. 당시 야후는 사망자의 계정 접근을 거부했지만, 법원은 유족의 요청을 받아들여 유언집행자의 디지털 자산 접근 권리를 인정하였다. 이와 같은 사례는 RUFADAA 법안 통과의 촉매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미성년 자녀가 자살한 후, 부모가 자녀의 페이스북 메시지 기록을 요청했던 사건이 있다. 이 경우, 프라이버시와 보호자의 권리 사이에서 논란이 이어졌고, 일부 주에서는 보호자가 미성년 자녀의 사망 후 디지털 기록에 접근할 수 있도록 명시하는 조항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처럼 실제 사례들은 디지털 유산을 둘러싼 다양한 법적, 윤리적 이슈를 반영하며 디지털 유산 정리가 단순한 ‘정보 이전’이 아니라 고도로 민감한 권리 조정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4. 우리에게 주는 교훈: 생전 준비가 곧 디지털 상속의 시작

미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배울 수 있다. 디지털 유산은 단지 데이터가 아니라, **‘법적으로 보호받고, 절차에 따라 이전될 수 있는 자산’**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이 개념을 법제화하고, 유언장에 디지털 자산 항목을 명시할 수 있도록 공증 구조를 갖췄으며, 대형 플랫폼들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까지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정의나 접근 권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족하다. 미국처럼 비상 연락처 등록, 유언장에 디지털 자산 포함, 계정별 사후 처리 설정 등의 제도를 개인이 직접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용자의 자발적인 정리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역시 향후 법과 제도가 따라오겠지만, 그 전에 개인이 사전 정리를 통해 유족의 혼란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디지털 유산 정리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살아 있을 때 해야 할 일”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동일하다. 미국의 제도적 사례는 우리의 현실에 실질적인 이정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