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SNS 추모 페이지, 감정 치유에 어떤 영향을 줄까
1.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애도 방식: 추모 계정의 등장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SNS 상에서 그 사람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는 고인의 계정을 ‘추모 계정(Memorialized Account)’으로 전환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계정 폐쇄가 아니라, 고인의 생전 활동을 기록한 사진과 글을 보존하면서 유족과 지인이 추모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디지털 기억의 장이다. 특히 페이스북은 유족이 사망 신고서를 제출하면 해당 계정을 추모 모드로 전환하며, 타인의 접근이나 해킹을 방지하는 동시에 고인을 기리는 공간으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기능은 과거 물리적인 추모 공간이 갖던 역할을 온라인이 대신하면서, 현대적인 애도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물리적 모임이 어려운 상황에서 SNS 추모 페이지는 멀리 떨어진 이들이 서로의 슬픔을 공유하고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접점이 되기도 했다.
2. 감정 치유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 말 못한 작별 인사
SNS 추모 페이지가 슬픔을 치유하는 데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일정 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한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디지털 추모 공간이 유족의 **“복합 애도 반응(complicated grief)”**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많은 유족은 갑작스러운 이별 이후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한 데서 큰 후회를 느낀다. 추모 페이지는 이러한 심리적 공백을 메우는 통로가 된다. 고인의 게시물에 댓글을 남기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는, 마치 고인과 아직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감정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심리적으로 '마무리 과정'을 겪게 만든다. 비록 실제로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더라도, 이 과정 자체가 유족에게 일종의 ‘상징적 작별 인사’가 되는 것이다. 일부 유족들은 추모 계정을 일기장처럼 활용하며 슬픔을 표현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게 된다.
3. 슬픔의 공유, 공동체적 애도의 가능성
SNS 추모 계정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애도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고인의 친구, 동료, 온라인 지인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슬픔은 개인의 몫이 아니라 사회적 감정으로 전환된다. 친구들은 “그때 너와 나눴던 대화가 그립다”, “너의 미소가 그립다”와 같은 메시지를 남기고, 이는 다른 유족들에게도 따뜻한 기억으로 전달된다. 이러한 ‘집단 기억’은 고인을 잊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유족들이 느끼는 고립감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특히 10~30대 젊은 층에게 SNS는 삶의 중요한 무대였기 때문에, 고인의 정체성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SNS 계정은 그 사람의 연장선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래서 유족에게는 계정을 지우는 것보다 보존하는 것이 훨씬 더 위로가 될 수 있다. 많은 플랫폼이 자동 삭제보다는 추모 기능을 제공하는 것도 이러한 심리적 필요를 반영한 흐름이다.
4. 추모의 기술과 윤리 사이: 언제, 어떻게 남겨야 할까
다만 SNS 추모 계정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일부 유족은 계정을 볼 때마다 고인의 죽음을 계속해서 상기하게 되며, 오히려 슬픔이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또한 고인의 사망 사실을 잘 알지 못했던 지인들이 계정을 방문해 무심코 ‘좋아요’를 누르거나, 자동 생성된 생일 알림이 올라오는 상황은 유족에게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추모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고인의 동의나 의사가 담긴 지침이 필요하다. 사망 후 계정을 추모 모드로 전환할지, 완전히 삭제할지, 특정인만 접근할 수 있게 할지 등을 유언장이나 디지털 사전 지시서에 명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나아가 플랫폼들도 단순히 계정 전환 기능만 제공할 것이 아니라, 슬픔에 대응하는 가이드라인이나, 일정 기간 후 자동 잠금 기능 등을 함께 제공해 감정적 충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결국 디지털 추모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어떻게 존중하느냐의 윤리적 문제이기도 하다.